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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가고 스타일만 남았다. - 친절한 금자씨
<CHRIS>
2005. 8. 10. 08:38

목요일 밤, 영화를 보고 돌아오면서 일단 영화 자체는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싫어마지않았던 이영애는 예상보다 깔끔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뭐, 이영애를 생각하며 만든 영화라고 하니 그녀가 잘 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겠지만, 어쨌든 한 옥타브 높은 가성 비스무레한 닭살돋는 목소리에도 가끔씩 지나치는 자연스러운 어투와 표정은 꽤나 실감나는 연기였다. 그리고 탄탄한 연기를 보여주는 조연과 까메오, 어리벙벙한 미소년 근식(김시후) 역시 신인같지 않은 재미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올드보이에서 인정을 받았다던(올드보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잘 모름) '멋진 스타일'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된 금자씨. 가끔 보여지는 만화같은 화면과, 그로테스크한 금자씨와 잘 맞물려 돌아가는 배경 음악은 박찬욱 감독이 해외에서 그냥 상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더라.
아쉽지만 그게 다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금자씨의 수십년에 걸린 복수와 그 과정, 결과를 통해 마지막에 가슴 속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돌아보면 과연 무슨 이야기를 보았던가 하는 의문이 남기도 하였으며, 금자씨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소문냈던 그녀의 지원자들은 친절한 금자씨를 위하여 과연 무엇을 했는지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다. 친절한 금자씨와 그녀의 딸 제니, 그리고 다른 악역과는 다르다는, 그래서 독특한 캐릭터라는 백선생을 통해 나는 과연 무엇을 느껴야 했던 것일까.
고등학교 때, 시(詩)를 배우던 생각이 난다. 유치환의 시 '깃발'. 이 시에서의 '깃발'은 이상향을 찾아가려는 동경과 의지를 상징하며, 깃발이 깃대에 묶여 나부끼는 것은 결국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을 의미한다... 라고 달달 외워버렸던 여러가지 시 이야기. 내가 느낀 것과는 상관없이 이것은 무슨 뜻, 저것은 무슨 뜻, 이렇게 외워버려야했던 그 시(詩)들. 내가 진정 금자씨를 알기 위해서는 나의 느낌보다 신문에 나온 영화 평론가의 영화 리뷰를 봐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좋은 영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