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이던가...암튼 회사사람들과 급번개 조성하여 보게 된 영화. '러브 앤 트러블'이다. 지금은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비교해가며 칙릿 무비임을 과하게 포장하여 솔직히 살짝 흥미가 동하였다. 줄거리는 잘나가는 '패션에디터'에 절친한 '게이룸메이트'를 둔 '잘나가는' 런던 아가씨(사실은 미국에서 자란 영국 & 스페인 혼혈. 아, 복잡하다) '잭스'가 끝내주게 멋진 남자를 게이로 오해하고 룸메이트에게 소개시켜주려다 벌어지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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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드러진 런던을 배경으로 화려한 패션,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 그리고 예쁜 여주인공과 그 친구의 가장 절친한 게이친구까지... 잡다한 칙릿의 소재거리들은 죄다 몰아넣은 영화랄까. 솔직히 재밌었다. 인정. 다양한 인간들이 등장하고 다양한 성격과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터져나오는 재미와 웃음에 지겹지 않았다. 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칙릿으로 포장한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라고 정의해야할 것 같다.
일단 너무나 미묘하게 칙릿스럽지 않은 것이 문제다. 주인공도 예쁘고 조연들도 개성 제각각, 200% 발휘하며 제 역할을 다하건만, 이 2% 부족함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첫째, 스타일이 부족하다. 굳이 '악마는 프라다...'와 비교하자면, 앤 해서웨이가 비록 깜찍함은 부족해도 길쭉한 기럭지에서 나오는 스타일리시한 포스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뭘해도 그냥 깜찍하다. 심지어 탱고를 끝내주게 춰도 섹시해보이지가 않는다.
둘째, 사람 보는 눈이 없다. 얘기 한번 나눠보지 못한 남자를 제멋대로 '게이'로 정의내리고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걸 동네방네 소문까지 내고 다닌다. 사실을 말하려는 남자의 입을 매번 막고 듣지 않으려 한다.
셋째, 예의가 없다. 그 남자가 게이건 스트레이트건 레즈건간에, 달랑 한 두 번 본 사람을 초대해놓고 란제리바람이라니. 그것도 모자라 훌렁 벗고 욕조 안에서 면도를 하면서 대화를 하자니 이게 무슨 가정교육 부족한 시츄에이숀? 그리고 네 게이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보모니?
다섯째, 결정적으로 급 '비운의 여주인공'이 되어버린다. 잘나고 똑똑하셨던(패션에디터에 스페인어 유창, 탱고 잘 춤, 옷발 잘 삼, 돈도 많은 것 같음 등) 아가씨가 막판에 '어릴 때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연애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으나, 끝까지 아닌 척 버티다 막판까지 사랑하는 남자에게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떠나보내는 비련의 여주인공' 설정이었다니. 급실망의 물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판 살짝 까메오 출연해주시고 중간중간 런던 풍경(뉴욕도 이제 유행이 지났나보다)도 슬쩍 지나가주시고, 액자식 구성이라는 특이한 진행방식, 게이 친구 역시 사랑의 장난에 놀아나다 정착하는 등 재미는 있었다.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다시 한번 인정. 그러나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으로, 여유롭게 본 영화가 아니었다면 좀 더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