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9 Silent Night, Nylon Night 2011 by Lucid Fall
음악 / 2011. 12. 31. 15:23
2011년 12월 28일, 충동적으로 결제한 루시드폴 콘서트.(너무 막판이라 무통장 결제도 안되더구만. 기냥 바로 카드 결제. ^^;) 고백하자면 난 단순히 '콘서트'를 가고 싶었고, 신촌은 내게 제법 매력적인 위치였다. 솔직히 난 그의 앨범을 들으며 잠든 적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어딘지 씁쓸한 연말, 차분한 음악 속에 깊이깊이 침전하고 싶었던 마음도 분명 있었다. 그렇게 그의 공연을 예매했고, 결제했다.
1. 시작은 미약하였다.
시작은 어딘지 덜컹덜컹. 버스에 올라타고나서야 지갑을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고, 미리 현장에 도착해서 언니가 부탁한 사인CD를 구입하겠다는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아...현금이 없어도 생활에 불편은 전혀 없었건만, 하필 이런 때...
쓸데없이 애매하게 일찍 도착해서 캠퍼스를 헤매는 시간이 좋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가게 된 학교는 여기저기 많이 변해있었고 내가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에...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어! 익숙한 건 학관의 후진 화장실 뿐. 아...정말...아직도 너무 후지더라...수년 전, 간만에 학교를 방문했을 때 내가 돈을 많이 벌면 학관의 화장실을 수리해주리라 마음 먹었는데, 몇년이 지나도 여전하더군. 흑, 후배들아 돈 없는 이 선배를 용서해..;;;
그렇게 교정과 신촌 거리를 한참을 헤매다 들어간 백주년 기념관. 아...갓 입학해서 무슨 설명회를 들으러 왔던 그 때, 이 곳은 너무너무 크고 웅장한 곳이었는데. 십여년만에 다시 들어간 그 곳이 어찌나 작고 아담하게 느껴지던지... 스무살의 내가 그렇게 작았던걸까. 키가 큰 것은 아닌데, 무엇이 지금 이 곳을 이렇게 작게 느끼게 만들었는지...익숙하면서 낯선 느낌이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쪼금은 쓸쓸했다.
2. 자리빨(?)이 컸다.
막판에 한자리가 빈 것을 잡은 것 치고는 자리는 꽤 훌륭했다. (무대 정중앙 중간열. 좌우에 남/여 커플이 아닌 여/여 커플이 앉아서 더 좋았어! -_-) 사실 지금까지 들었던 그의 노래를 감안했을 때 중간에 어느 정도 잠들며 볼 것까지 예상했었는데, 2시간 내내 무대 정중앙에 그저 앉아 정면을 주시하며 노래하는 콘서트 구성 덕분에 졸기는 커녕 긴장 빡! 하고 볼 수 있었다. (졸면 바로 보일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긴장이...^^;)
그렇게 등장한 폴님은...참 훈훈했다.
기럭지가...
그런데 의자에 앉으면 그냥 TV에서 보던 그냥 그(?) 루시드폴. 아...서서 노래해요그대...
3. 의외로 밝고 활기찼다.
다시 한번 고백하건데, 난 그의 노래를 잘 모른다. 새로 나온 앨범을 듣고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앨범이 그의 무려 '다섯번째' 앨범이라는 것도 콘서트장에서 처음 알았고, 설명이 없었던 기존 곡들은 한소절도 따라부를 수 없는 정도로, 난 그저 말그대로 'Nylon Fan'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이런 나에게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중간중간 다이나믹하게 편곡된(혹은 편곡되었다고 짐작하는, 원곡이 어떤건지도 몰라 ㅠ.ㅠ) 노래들은 삼바와 보사노바(라고 추정되는 남미의 어떤 느낌)의 열정으로 가득했고, 앉아있는 그의 양 팔과 나의 열 발가락을 춤추게 만들었다. 또한 새로운 앨범의 곡을 부를 때면 하나하나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만들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콘서트라기보다는 마치 음악감상회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내가 그의 노래의 대부분일꺼라 예상했던 기존의 부드러운 곡들은 (비록 그의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았다할지라도) 괜스레 나를 눈물짓게 만드는, 처량하게 혼자 온 여자가 눈물 바람인 것이 민망해 꾹 참게 만드는, 말그대로 음악 속에 '침전'하고 싶었던 나를 가라앉히는 잔잔한 물결같은 느낌이었다.
4. 두번째 특허를 내실 때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참여했기에 오히려 더욱 즐거웠던 콘서트. 4월에 있을 콘서트까지 한번 가볼까...하고 생각하게 된 나 자신이 신기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콘서트 내내 재미있었던 장면은, 마치 이제는 그의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스위스 개그가 등장할 때마다 터져나오는 '박수'. 박수라니박수라니...^^;; 마치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듯, 웃음도 실소도 아닌 박수가 터져나오다니.
이제 '스위스 개그'라는 당신의 두번째 특허를 내실 때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가다가 부랴부랴 한 컷
충동적으로 무언가에 이끌리듯 참가한 루시드폴 콘서트. 충분히 즐거웠고 아름다웠다. 너무너무 큰 기대를 하고 참가했던 페퍼톤스 공연이 나의 지나친 기대로 불완전 연소했던 기억을 떠올렸을 때(물론 이 공연도 짱 좋았음. 단지 전날 초사이언인 에피소드로 인해 나의 기대치가 너무 급상승했던 것이 치명적...ㅠ.ㅠ) 기대 대비 만족감은 오히려 그때보다 아주아주 약간 더 높았던 만족스러운 공연.
새해가 시작되면 업무의 헬게이트가 열릴 것만 같아서 연말을 부지런히 콘서트로 채웠는데, 아무리 헬게이트가 열린다고해도 다음번 공연 공지가 뜨면 아마 나는 또 컴퓨터 앞에 앉아 광클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대들은 하루를 마치고 노래할 수 있어 감사하고, 나는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어 또 감사하니까. 그리고, 세상은 넓고 노래는 정말 아름다우니까.
기타 잡상 1. 스토케 하이체어 추천이오
두시간 동안 앉아있는 공연의 특성상 높은 의자를 맞추었다는 그의 설명이 있기는 했지만, 발판이 좁아 다리를 구부리고 발을 디딜 수 없는 의자의 구조는 두시간 내내 앉아서 기타를 치기에 다소 불편함이 있는 디자인이 아니었나 싶다. 덕분에 막판에는 다리를 길게 뻗고 기타를 쳤기에 나같은 덕후의 마음은 그 훈훈한 다리 길이로 선덕선덕하긴 했지만서도...^^;;; 발받침이 좀 더 넓은 의자가 필요할 듯 싶습니다. (그러나 발받침이 너무 넓을 경우 자칫 의자가 앞으로 쏠릴 수도 있으니 굉장히 섬세한 선정이 요구됨)
기타 잡상 2. 짱 귀요미 베이시스트
하악하악...어느 공연에나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는 베이시스트. 흥겹게 리듬을 타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콘트라베이스의 현을 뜯으실 때 나는 홀딱 반해버렸어. 아...베이스...나는 언제쯤 '잡고 있는' 수준을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