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현실적인 로맨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조선 시대 배경의 소설을 두고, '현실적인 로맨스'라고 하자니 어폐가 있는 것도 같지만서도, 허황되지 않은 공감을 주는 즐거운 소설이다.
보통의 '남장여자' 컨셉의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를 보면 아무리 잘 포장을 하더라도 '말도 안돼~'싶은 부분이 적지 않기 마련이다. 게다가 나름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로맨스 소설이다보니, 허황되고 무지하게 손이 오그라드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나름 시원한 이야기 전개에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는 즐거운 책이었다.
앞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 유생들 편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남장을 하고, 그리고 또 먹고살기 위해서 성균관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똑똑한 여인이 멋진 남성을 만나고, 가슴 설레지만 남장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면서 동기들과 사랑과 우정을 만들어나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의 사랑 이야기가 엄청 쿨한 척 하는 여주인공을 뚜렷한 이유도 없이 모든 남자 주인공들이 다 좋아하고, 또 딱히 설명없이 너무나 잘나서 하는 일마다 다 술술 풀리더라는...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전개가 아니라서 마음에 들었다. (트와일**을 보면서 요렇게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읽다 말았었지 -_-;)
너무나도 잘난 남자 선준이라는 캐릭터는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때로는 한 남자를 사모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진정 신뢰할 수 있는 벗의 모습으로 바쁘게 활약한 윤희의 모습 덕분에 오히려 진정 '쿨한' 사랑 이야기가 되었던 것 같다.
드라마로 방영된 것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외견으로는 제법 훌륭하게 캐릭터를 뽑아낸 것 같던데, 잠깐 살펴본 내용은 책이랑은 꽤 다르게 진행될 것 같더라. '까칠 도령'으로 바뀌어 버린 선준의 캐릭터야, 원래 소설 속의 선준이 지나치게 잘나고 착한 말그대로 '스테레오 타입'의 엄친아라서 드라마로 이야기를 뽑아내기에 힘들 것 같긴 하다. 뭐 그건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더라도, 원작에는 있지도 않은 '하인수'라는 캐릭터를 끼워넣어서 착한 놈, 나쁜 놈 줄 긋는 드라마로 바꾸어 버린 것은 조금 아쉽다.
'절대악'을 만들어서 드라마를 쉽게 끌어나가려고 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 방법이 너무 안이하달까... 소설이 흥겨웠던 것은 잘금 4인방이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악당과 맞서 싸웠기 때문이 아니라, 깨알같은 사건사고들을 겪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사랑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인데 말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꼭 그렇게 착한 놈/나쁜 놈 반토막 내놓고 싸움을 붙이더라. 흥.
드라마로 인해 흥미를 가지게 되어 읽은 소설이지만, 막상 소설을 읽고 나니 소설이 너무나 즐거웠기에 오히려 드라마에 흥미를 잃었으니 오호 통재라.
일본, 대만 등지에 번역되어 팔리고 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잘은 모르지만) 꼼꼼하게 재현해내고 있기에, 이런 소설이 세계로 널리널리 퍼지는 것은...나는 찬성일세~!